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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이모가 치매 증상으로 묶여 누워 계셨을 때, 저는 그게 병원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외롭고, 무섭고, 밥도 제대로 못 드신 탓이라고 느꼈습니다. 실제로 소꼬리를 사다 고아 드리고 딸들이 곁에서 이야기를 많이 나눠 드렸더니, 이모는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치매는 막연히 두려워하는 것보다, 지금 당장 뭔가를 바꾸는 쪽이 훨씬 힘이 셉니다.

인지예비능 — 뇌에도 근력이 있다는 걸 알고 계셨나요?
뇌에 알츠하이머 병변이 있는데도 멀쩡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같은 정도의 병변을 가진 다른 사람은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이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인지예비능(Cognitive Reserve)입니다. 인지예비능이란 뇌의 신경 회로망이 손상됐을 때, 다른 경로로 기능을 우회하고 복구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뇌 안에 쌓아 둔 여분의 회로가 얼마나 많으냐의 문제입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이태영 변호사가 85세 무렵에야 알츠하이머 진단을 공개한 사례가 이를 잘 보여 줍니다. 두 분 모두 젊어서부터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하고 높은 교육 수준을 유지했기에, 같은 병변이 있었더라도 발병 시점이 훨씬 뒤로 밀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인지예비능을 꾸준히 쌓지 않았다면 훨씬 이른 나이에 증상이 나타났을 것이라는 게 연구자들의 공통된 시각입니다.
그렇다면 인지예비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요? 거창한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핵심은 신경 가소성(Neuroplasticity)을 높이는 것입니다. 신경 가소성이란 뇌의 신경세포가 새로운 자극을 받을 때마다 시냅스, 즉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망을 더 많이 만들어 내는 성질을 뜻합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즐거운 자극이 오면 하나였던 연결망이 열 개, 백 개로 늘어나는 구조입니다.
저는 집안일을 하찮게 여기는 시각에 솔직히 좀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 "생각 없이 일상을 반복하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맞긴 한데, 정작 집안일은 생각 없이 하기가 어렵습니다. 가구를 어떻게 배치하면 동선이 편할지, 오늘 냉장고 재료로 어떤 요리를 만들까 — 부엌일 하나만 해도 머리를 꽤 많이 씁니다. 집안일을 낮잡아 보는 것이 오히려 인지예비능에 대한 오해를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것을 배울 때는 스트레스 없이, 좋아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합창단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거나, 어릴 때부터 배우고 싶었던 악기를 뒤늦게 시작하는 것도 훌륭한 방법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 고립 없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인데, 친구와 걸으면서 나누는 수다 한 마디에도 뇌는 상대의 말을 처리하고 답을 만들어 내느라 쉬지 않고 움직이기 때문입니다(출처: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IA)).
- 친구와 대화하며 함께 걷기 — 운동과 인지 자극을 동시에
- 좋아하는 악기·노래·공예 등 새로운 취미 시작하기
- 독서·글쓰기 등 언어 처리 자극 꾸준히 유지하기
- 합창단·동호회 등 사회적 활동으로 고립 차단하기
운동과 수면 — 허벅지 1cm가 노후 재산이 되는 이유
"허벅지 1cm를 늘리면 노인이 돼서 수억 버는 거다"라는 말, 처음엔 과장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이모 상황을 직접 겪고 나서는 완전히 다르게 들립니다. 치매가 발병하면 간병인이 필요하고, 병원 입원 비용이 들고, 본인은 사회활동을 못 하게 됩니다. 근력 운동이 그 시점을 몇 년이라도 늦춰 준다면, 그건 정말로 경제적 가치가 있는 투자입니다.
근력 운동이 뇌에 직접 영향을 주는 이유는 과학적으로도 명확합니다. 근육에서 분비되는 이리신(Irisin)이라는 신경 영향인자가 혈류를 타고 뇌로 들어가, 신경세포를 보호하고 시냅스 가지를 더 많이 뻗게 만듭니다. 여기서 이리신이란 근육 수축 시 분비되어 뇌에서 신경 보호 효과를 일으키는 단백질 호르몬입니다. 또 BDNF(뇌유래신경영양인자)도 함께 분비되는데, BDNF란 뇌 신경세포의 생존과 성장을 돕는 단백질로 뇌를 보호하는 핵심 인자입니다(출처: 세계보건기구(WHO)).
헬스장에 등록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직접 해보니, 벽에 등을 기대고 뒤꿈치를 천천히 들었다 내리는 동작이나, 앉아서 발목을 돌려 주는 것만으로도 하체 근력을 꾸준히 자극할 수 있었습니다. 과한 목표를 세우면 사흘이 멀다 하고 포기하게 됩니다. 일상 안에서 할 수 있는 작은 것부터 습관으로 만드는 게 훨씬 현실적입니다.
유산소 운동은 혈류를 활성화해 고혈압·고지혈증·당뇨 수치를 낮추고, 체내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역할을 합니다. 활성산소란 세포를 산화시켜 뇌 기능을 포함한 전신 기능을 저하시키는 불안정한 산소 분자입니다. 대중교통을 타러 걸어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효과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도 요즘은 될 수 있으면 차를 두고 버스를 탑니다.
수면도 빠질 수 없습니다. 잠자는 동안 뇌는 글림프 시스템(Glymphatic System)을 가동해 낮 동안 쌓인 노폐물을 씻어 냅니다. 글림프 시스템이란 뇌 안의 청소 통로로, 알츠하이머와 연관된 아밀로이드 단백질 같은 찌꺼기를 수면 중에 배출하는 역할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6시간 이상은 자야 이 청소 과정이 충분히 이루어집니다. 저는 아침에 눈을 뜨면 속으로 한 번 묻습니다. '오늘 뇌 쓰레기 다 치웠나?' 자기 전 스마트폰을 멀리 두고, 방을 어둡고 조용하게 유지하는 것이 깊은 수면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치매 예방에 가장 효과적인 운동이 따로 있나요?
A.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함께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유산소는 혈류 개선과 활성산소 제거를, 근력 운동은 이리신과 BDNF 같은 신경 보호 물질 분비를 담당합니다. 헬스장이 부담스럽다면 걷기와 집에서 하는 뒤꿈치 들기만으로도 충분한 시작이 됩니다.
Q. 인지예비능은 나이가 들어서도 높일 수 있나요?
A. 네, 가능합니다. 뇌의 신경 가소성은 나이와 상관없이 새로운 자극이 있을 때마다 작동합니다. 60대, 70대에 악기를 처음 배우거나 합창단에 합류하는 것만으로도 시냅스 연결망은 새롭게 늘어날 수 있습니다. 시작이 늦은 것보다 시작하지 않는 것이 더 나쁩니다.
Q. 치매 환자 가족은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을까요?
A. 예전의 모습과 비교하는 것이 가족에게도 환자에게도 가장 힘든 일입니다. '지금 이 분은 새로운 분이다'라는 마음으로 현재 상태에 맞게 대응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이모를 곁에서 모셔 보며 제가 느낀 것은, 익숙한 환경과 가족의 목소리, 그리고 충분한 영양이 어떤 약보다 먼저라는 점이었습니다.
Q. 수면 시간이 짧아도 깊이 자면 괜찮은가요?
A. 수면의 질이 양보다 중요한 것은 맞지만, 글림프 시스템이 뇌 노폐물을 충분히 제거하려면 최소 6시간의 수면 시간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깊은 수면을 위해서는 취침 전 스마트폰 블루라이트를 차단하고, 방을 어둡고 조용하게 유지하는 것이 가장 실질적인 방법입니다.
결론
치매가 두렵다면, 그 두려움을 행동으로 바꾸는 것이 가장 빠른 답입니다. 이모를 보면서 제가 배운 것은 거창한 처방이 아니었습니다. 따뜻한 국물 한 그릇, 곁에서 나누는 대화, 익숙한 공간과 얼굴 — 그것이 먼저였습니다. 물론 인지예비능을 쌓고, 이리신과 BDNF가 분비되도록 근력 운동을 하고, 글림프 시스템이 돌아갈 수 있도록 잠을 충분히 자는 것도 꼭 필요합니다.
치매는 더 이상 속수무책의 병이 아닙니다. 신경 가소성을 믿고,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셨으면 합니다. 오늘 산책길에 친구에게 전화 한 통 거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뇌는 조금 달라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