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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대상포진이 발진이 생겨야 비로소 의심할 수 있는 병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두 사람이 거의 비슷한 시기에 대상포진을 겪는 것을 지켜보면서, 같은 병인데 결과가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싶어 제대로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발진이 나타나기 전, 즉 피부에 아무 흔적이 없는 상태에서도 대상포진을 의심할 수 있는 신호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 신호를 얼마나 빨리 알아채느냐가 이후 수개월, 심지어 수년간의 통증 후유증을 결정짓습니다.

발진 전에도 대상포진은 이미 시작됩니다
대상포진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Varicella-Zoster Virus, VZV)가 일으키는 질환입니다. 여기서 VZV란 어릴 때 수두를 앓게 한 뒤 몸 밖으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척추 신경 뿌리 속에 잠복해 있는 바이러스를 말합니다. 수두 백신이 보편화된 지금도 우리나라 성인 인구의 98% 이상이 이 바이러스를 몸 안에 지닌 채 살아간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가 면역력이 떨어지는 순간 신경 세포 안에서 증식을 시작합니다. 증식하는 과정에서 면역 시스템이 반응하면서 신경 자체에 염증이 발생하고, 이때 찌릿찌릿하거나 콕콕 쑤시는 신경통이 먼저 나타납니다. 바이러스가 신경을 타고 피부까지 이동하는 데는 보통 3일에서 7일이 걸립니다. 그러니까 피부에 수포(물집)가 보이기 전, 길게는 일주일 가까이 통증만 있는 시기가 존재하는 셈입니다.
제가 지켜본 50대 초반 지인은 이 신호를 그냥 넘겼습니다. 종아리 쪽이 가렵고 따끔거리면서 붉은 발진이 여기저기 흩어진 것을 처음에는 단순한 피부 트러블로 봤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수포와 함께 극심한 통증이 본격화됐습니다. 항바이러스제 복용 시작이 발진 후 일주일이 넘어서였으니, 사실상 초기 골든타임을 완전히 놓친 셈이었습니다.
발진 전 신호, 이렇게 생겼습니다
발진 이전 단계의 초기증상은 크게 네 가지 특징을 가집니다. 이 패턴을 알아두면 수포가 생기기 전에도 "혹시 대상포진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신경통(neuropathic pain)의 양상입니다. 여기서 신경통이란 근육통이나 관절통과는 다르게, 찌릿찌릿하거나 전기가 통하는 듯한 느낌, 혹은 바람이나 옷이 스치기만 해도 깜짝 놀랄 정도의 예민한 통증을 말합니다. 화끈거리거나 가려운 느낌이 동반되기도 합니다. 이런 통증이 이틀에서 사흘 이상 지속된다면 단순 근육통과는 다르다고 봐야 합니다.
두 번째는 반드시 한쪽에만 생긴다는 점입니다. 척추에서 뻗어 나오는 신경은 좌우 각각 따로 존재하기 때문에, 대상포진 바이러스가 한쪽 신경을 따라 퍼지면 통증도 그쪽에만 나타납니다. 양쪽에 동시에 통증이 온다면 대상포진일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세 번째는 피부 분절(dermatome)을 따르는 띠 모양 분포입니다. 피부 분절이란 척추의 각 신경이 담당하는 피부 영역을 말하며, 가슴이나 복부는 좌우로 길게, 팔다리는 위아래로 길게 이어집니다. 통증이 이 분포를 따라 띠처럼 퍼진다면 대상포진을 강하게 의심해야 합니다(출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네 번째는 전신 증상입니다. 열이 나거나 오한, 몸살 기운이 신경통과 함께 오면 대상포진 가능성이 더 높아집니다. 다만 이 증상만으로 진단하기는 어렵고, 앞선 세 가지 특징과 함께 나타날 때 의미가 있습니다.
- 찌릿찌릿·전기 오는 느낌·화끈거림 등 신경통 양상의 통증이 2~3일 이상 지속
- 통증이 반드시 한쪽(좌 또는 우)에만 발생
- 피부 분절을 따라 띠 모양으로 퍼지는 분포
- 발열·오한·몸살 등 전신 증상 동반 가능
골든타임 안에 항바이러스제를 써야 하는 이유
대상포진 치료의 핵심은 항바이러스제(antiviral agent) 투여입니다. 항바이러스제란 바이러스의 복제를 억제해 병의 진행을 늦추고 합병증을 예방하는 약물로, 대상포진에서는 아시클로버 계열이 주로 쓰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피부 발진 발생 후 72시간 이내에 복용을 시작해야 대상포진 후 신경통 예방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72시간 안에서도 한 시간이라도, 하루라도 빨리 먹을수록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제가 지켜본 또 다른 사례가 여기서 중요하게 참고가 됩니다. 제 친구는 오른쪽 다리 오금, 종아리, 허벅지, 발등에 걸쳐 콕콕 찌르고 욱신욱신하는 통증이 생겼을 때, 경험자에게 먼저 연락해 대상포진 가능성을 들었습니다. 당시 발진도 수포도 없는 상태였지만 바로 동네 병원을 찾아 3일분 항바이러스제를 처방받았고, 통증을 느낀 지 5시간 만에 복용을 시작했습니다. 나흘째부터 눈에 띄게 호전됐고, 일주일 만에 거의 나았습니다. 수포조차 제대로 올라오지 않은 채 끝난 셈입니다.
반면 지인은 발진 후 일주일이 넘어서야 항바이러스제를 시작했고, 3월이 다 지나도록 포진 부위가 아물지 않았으며 흉터도 상당히 남았습니다. 같은 대상포진이라도 골든타임 안에 처치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경과가 이렇게 달라집니다. 특히 얼굴이나 눈 주위에 생기는 대상포진은 각막 손상으로 인한 시력 저하, 귀 주변에 생기는 경우는 안면 신경을 침범해 안면 마비(람세이-헌트 증후군)까지 남길 수 있으므로 빠른 처치가 더욱 중요합니다.
예방접종, 젊다고 미뤄도 되는 걸까요
대상포진을 나이 든 분들의 병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집계한 연령별 발생률을 보면 이 인식이 꽤 빗나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출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20~30대가 전체 환자의 약 16%, 40대까지 포함하면 32%에 달합니다. 50대 이하 환자 수가 60대 이상과 합산하면 전체의 절반을 넘습니다. 면역에 큰 문제가 없어도 걸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인의 경우를 보면 작년엔 이석증, 올해는 대상포진이 찾아왔습니다. 스트레스가 잦고 면역력이 꾸준히 떨어진 상태에서 바이러스가 활성화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릴 때 수두를 앓았고 대상포진 예방접종 대상이었는데도 예방을 미뤄온 대가를 이번에 치른 셈입니다.
예방접종 이야기를 하면 "한 번 걸렸으니까 면역이 생긴 거 아니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반대입니다. 한 번 대상포진을 앓은 사람은 이후 재발 위험이 더 높습니다. 과거에 걸렸더라도 예방접종을 맞는 것이 권고됩니다. 최근 출시된 재조합 대상포진 백신은 예방률이 94% 이상으로 보고될 만큼 효과가 높습니다. 만 50세 이상은 물론, 이전에 대상포진을 경험했다면 나이와 관계없이 접종을 고려해야 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수포 없이 통증만 있어도 대상포진일 수 있나요?
A. 네, 충분히 가능합니다. 신경 염증이 먼저 시작되어 피부 발진 없이 통증만 나타나는 시기가 통상 3~7일 존재합니다. 한쪽에만, 신경 분포를 따라, 신경통 양상의 통증이 이틀 이상 지속된다면 수포가 없더라도 병원에서 대상포진 가능성을 상의해 보는 것이 맞습니다. 실제로 발진 전에 항바이러스제를 처방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Q. 대상포진이 허리 디스크랑 증상이 비슷하다고 하던데, 어떻게 구분하나요?
A. 팔다리에 오는 대상포진은 초기에 목디스크·허리 디스크와 구분이 어렵습니다. 두 질환 모두 신경 뿌리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통증 분포가 겹칩니다. 다만 평소 허리가 멀쩡했던 사람에게 갑작스럽게 한쪽 다리나 팔로 신경통이 온다면 대상포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피부 발진이 생기는지 꼼꼼히 확인해야 합니다.
Q. 대상포진 후 신경통은 얼마나 오래 가나요?
A. 대상포진 후 신경통(PHN, Post-herpetic Neuralgia)은 피부 발진이 다 나은 뒤에도 해당 부위에 통증이 남는 합병증입니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수십 년간 이어지는 경우도 보고됩니다. 고령일수록, 초기 치료가 늦을수록 후유증이 남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Q. 얼굴에 생기는 대상포진이 더 위험한가요?
A. 그렇습니다. 얼굴, 특히 눈 주위에 오는 대상포진은 각막까지 손상시켜 시력 저하 후유증이 남을 수 있습니다. 귀 주변에서 시작하는 대상포진은 안면 신경을 함께 침범해 안면 마비(람세이-헌트 증후군)를 일으킬 수 있으며, 이 경우 통증이 가라앉아도 마비가 후유증으로 남기도 합니다. 얼굴 쪽 대상포진일수록 더 빠르게 병원을 찾아야 합니다.
Q. 대상포진 예방접종은 한 번만 맞으면 되나요?
A. 백신 종류에 따라 다릅니다. 최근 도입된 재조합 대상포진 백신은 2회 접종이 기본으로, 2~6개월 간격으로 맞습니다. 예방률이 94% 이상으로 보고될 만큼 효과가 높아 만 50세 이상이라면 적극적으로 고려해 볼 만합니다. 이전에 대상포진을 앓은 이력이 있어도 재발 예방을 위해 접종이 권고됩니다.
결론
두 사람의 사례를 비교해서 지켜보고 나니, 대상포진은 정말로 아는 만큼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발진이 없어도 한쪽에만, 신경 분포를 따라, 신경통 특유의 통증이 이틀 이상 이어진다면 그것 자체가 이미 신호입니다. 이 신호를 알고 5시간 만에 약을 먹은 친구와, 모르고 일주일을 버틴 지인의 결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정리하면, 발진 전 초기증상을 인지하고 가능한 한 빨리 항바이러스제를 복용하는 것, 그리고 만 50세 이상이라면 예방접종으로 미리 막는 것이 핵심입니다. 주변에 면역력이 떨어진 분, 스트레스가 많은 분이 계시다면 이 글을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의 고통은 직접 겪어본 사람만 안다고 하니까요.